한국전쟁을 배경으로 국군 패잔병이 되어 산속으로 숨어든 '나'가 인민군 탈영병이 되어 산속으로 숨어든 친구 '유담'과 극적인 조우를 하게 되지만, 이내 인민군 정찰병에게 발각될 위기에 처하고 '유담'이 '나'를 지키기 위해 자진하여 인민군의 소굴로 돌아가게 되면서 '나'는 결국 살았다는 내용의 그 소설...
그 소설은 그해 수능에 출제되면서 일곱 명의 학생들을 자살로 이끌었다.
시험 출제자들이 정해놓은 답을 두고, 정선우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왜곡하지 말라며 항의를 걸었기 때문.
1등급이었던 수능 성적표가 정답이 바뀐 한 문제로 인하여 2등급으로 떨어지던 그날, 옥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정연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는 나에게 생전 보여주지 않았던 환한 미소를 남겨두고 멀어져간다. 두 명의 인민군 정찰병에게 가녀린 양쪽 팔을 붙들린 채 그는 사라져간다.
보일락 말락 희미해져가는 그의 머리끝에서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고요히 울고 있다는 것을.
보일락 말락 희미해져가는 그의 머리끝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16년 전, 태인과 정연을 갈라놓았던 수능 문제는 그들에게 그것을 묻고 있었다.
... 자윤의 마지막을 절대로 죽음이라 말하고 싶지 않았던 선우의 마음이, 절필을 선언하면서까지 고집했었던 그 마음이 태인은 비로소 깨달아진다.
자진해서 돌아가는 자윤의 뒷모습을 보며 선우는 얼마나 많은 밤을 죄책감으로 괴로워했을까.
이 글을 쓰는 동안 골백번은 더 엎드려 울었겠지.
어쩜 평생을 그의 몫까지 살아내기 위해 그토록 쉬지 않고 글을 썼던 건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울컷 감정이 솟구친다.
그리고 이내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태인은 혹여라도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깨울까 싶어 황급히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한참을 울었어요.
그이의 손을 부여잡았던 그 손으로 가슴을 마구 치며 울었어요.
그러다 깨달았어요.
그이가 나를 많이 사랑했었다는 걸.
하루 종일 손에 물 마르지 않던 날 위해 잠자리에 들기 전 꼬박꼬박 로션을 챙겨주었던 것도 사랑이었고,
새벽에 아이가 깨서 울면 나보다 먼저 일어나
아이를 안고 조용히 달래던 것도 사랑이었고,
함께 산길을 걸을 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한 나를 얼른 잡아줬던 것도 사랑이었고,
... 사랑이었고
... 사랑이었고
... 사랑이었단 걸
참, 인생이란 알 수가 없지요.
그리고 저물어가는 인생의 뒤안길에서
나는 당신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더 이상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도 없고,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가는 몸은 또 하루 늙었구나를 말해주는 것 같아 노상 서글퍼지는 시기에 말입니다.
나는 좀처럼 알지 못했던 이가,
나를 그리워하며 써낸 이백여 통의 편지들과 한편의 시는 감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 편지 덕분에 나의 지난 인생도 다시금 돌아볼 수 있었고요.
굴곡 많은 시대에 태어나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많은 여성들처럼,
나 역시 평범에 지나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었는데,
당신의 편지로 인해 내 인생이 조금은 특별해진 느낌입니다.
남편이 내 삶에 의미와 가치를 알려주었다면,
당신은 안수희라는 한 여자의 일생에 위로와 향기를 더해준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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