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은 내 의견) 난 이해하지 못 했다.
어떻게 저렇게 차별주의적이고 백인우월주의적이고 환경을 배척하는 무식한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대명사라고 하는 미국에서 나왔는지... 그것도 두 번이나..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니 경제적 중하층 미국인들의 울분을 알겠다.
이제 '아메리칸 드림'은 불가능하다. 빈부의 격차는 참아왔지만 내 일자리마저 뺏어가는 건 참을 수가 없다. 당장 먹고 살 수가 없다.
그런데 민주당의 아이비리그 출신 국회의원과 대통령들은 이렇게 말해왔다.
자... 대학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줄께.. 거기서 열심히 공부하면 너희들도 인텔리층이 갖는 직업을 가질 수 있어..
하는 것이다. 당장의 생계가 문제인데.. 고차원의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그게 공정...하다고?
울분할 수 밖에 없다. 트럼프는 정확히 그 지점을 파고 들었다.
공정하다는 착각 - 마이클 샌들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
대형 입시 부정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인정받던 기업인, 연예인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충격이었다.
그들은 왜 그런 비리를 저질렀을까?
1. 경제적 불안? 즉... 명문대를 나와야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것이라는 불안? 사실 이건 아닐 것이다. 그들은 너무나도 부자가이기 때문에 그냥 가진 돈과 사업체를 물려줘도 된다.
2. 자녀들에게 '능력주의의 광채'를 두르려고 한 것이다. 이것이 더 의미심장한 목적이었다.
능력 지표 따내기
불평등한 사회에서 꼭대기에 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공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믿고 싶어 한다.
..'나는 나 스스로의 재능과 노력으로 여기에 섰다.'...
... 명문대 간판이 줄 수 있는 '능력의 지표' 말이다.
싱어는 정문으로 들어가는 일이 "여러분 스스로 해내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이 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 물론 sat 점수 조작이나 가짜 특기생 자격증 등을 '스스로 해내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신들의 부정행위를 자녀에게 비밀로 했던 것이다.
... "우리 부모님이 요트부 감독에게 돈을 찔러줬어. 덕분에 난 스탠포드에 들어왔지."
누구도 이렇게 말하며 긍지를 느끼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능력주의적 대입이 갖는 특질은 뚜렷해 보인다.
정당한 스펙으로 입학한 사람은 자신의 성취에 자부심을 가질 것이며, 이것은 자기 스스로 해낸 결과라 여길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 역시 문제가 있다.
그러한 입학이 헌신과 노력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정말로 오직 '자기 스스로' 해낸 결과라고 볼 수 있을까?
능력주의 입시제도는 '나의 성공은 내 스스로 해낸 것'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준다.
...그리고 만약 입시에 실패하면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닌 자기 자신의 잘못'이라는 인식도 심어주게 된다.
이는 청소년들에게 지나친 부담이다. 시민적 감수성에도 유해하다.
오늘날 가장 부유한 1퍼센트의 미국인이 하위 50퍼센트가 버는 것보다 더 많이 벌고 있다.
그러나 불평등의 폭발적 증가만으로는 포퓰리즘의 분노, 그 핵심을 설명할 수 없다.
미국인들은 오래전부터 소득과 재산의 불평등을 참아왔다.
어디서 출발하든 부자라는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사회적 상승 가능성에 대한 이런 믿음을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이다.
이 믿음에 응해, 주류 정당과 정치인들은 기회의 평등을 늘림으로써 증가하는 불평등에 대응해왔다.
세계화와 기술 혁신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을 억누르고, 고등교육 이수 기회를 넓혔다.
... '기회 균등'이라는 수사는 규칙을 지키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재능이 이끄는 만큼 높이 올라갈 수 있다"는 구호로 요약되었다.
하버드와 스탠포드 대학생 삼분의 이는 소득 상위 5분위 가정 출신이다.
장학금과 기타 지원책이 후하지만, 아이비리그 대학생 가운데 하위 5분위 출신자는 4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하버드와 그 밖의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소득 상위 1퍼센트(연간 63만 달러 이상) 출신의 학생은 하위 50퍼센트 가정 출신 학생보다 많다.
노력과 재능 만으로 누구나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미국인의 믿음은 더 이상 사실과 맞지 않는다.
... 사회적 이동성은 더 이상 불평등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없다.
사다리 자체가 점점 오르지 못할 나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능력주의적 오만은 승자들이 자기 성공을 지나치게 뻐기는 한편 그 버팀목이 된 우연과 타고난 행운은 잊어버리는 경향을 반영한다. ...
바닥에 있는 사람 역시 그 운명을 겪을 만하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기술관료적 정치의 도덕적 자세이기도 하다.
완벽한 능력주의는 (신의 은총 또는 행운 덕분에 나는 성공할 수 있었어.)라는 감사의 마음을 제거한다.
또한 우리를 공동 운명체로 받아들이는 능력도 경감시킨다.
우리의 재능과 행운이 우연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할 때 생기는 연대감을 약화시킨다.
그리하여 능력은 일종의 폭정 혹은 부정의한 통치를 조장하게 된다. - 윤석열이 생각 난다.
'오늘의 처방전(책 한 구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려움은 총알처럼 빠르게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 생각의 연금술 (0) | 2025.04.06 |
---|---|
청년들의 푸름은 풋풋한 푸름이 아니라 하루하루 상처받아 생기는 멍의 검푸른 그것과 같다. (0) | 2025.04.05 |
당신이 람보르기니의 운전석에 앉는다고 해서 반드시 당신이 부자인 것은 아닐 것이다. (0) | 2025.04.02 |
백수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0) | 2025.04.02 |
뭐든지 식초에 찍어먹도록 하자. - 식사가 잘못 됐습니다. (0) | 2025.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