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처방전(책 한 구절)

해야 하는 일 사이에 하고 싶은 일 슬쩍 끼워 넣기 - 빈틈의 위로

책마을 2024. 10. 23. 06:05

파란색은 내 의견

 

그 놈의 영어 공부

 

이전에 겪어본 적 없는 무기력과 불안, 불면으로 수호 씨가 병원에 찾아온 지 어느덧 네 달이 지나 있었다. 수호 씨는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약물 치료와 상담 치료를 진행했지만 안타깝게도 뚜렷한 호전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시간을 어떻게 보낼 생각이에요?"

결국 병가를 신청하기로 결정한 수호 씨에게 진단서를 내밀며 물어보았다.

 

"모르겠어요. 뭘 해야 할지. 쉬어본 적이 없어서요. 일단 영어 공부를 하면서 뭘 할지 더 생각해보려고 학원 등록은 해 놨어요."

나도 모르게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영어 공부라니. 또 그 놈의 영어 공부다.

 

뜨끔..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 퇴근 후나 휴일에도 마음 편치 않은 사람, 계속 무언가 해야만 한다는 느낌과 타인과 비교하는 마음에 쫓기는 사람,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유 모르게 공허한 사람, 내 삶을 사는 것 같지 않은 사람, 너무 지치는 이 삶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

...

난데?

 

 

 

잘 지냈어요.

코로나에 걸렸었거든요.

 

잘 지냈어요. 코로나에 걸렸었거든요. 일주일간 방에 격리되었는데, 처음으로 휴식다운 휴식을 경험했어요. 초기엔 이래도 되나 싶었어요. 일도 안 하고, 아이들도 안 챙기고 누워서 멍하니 있는 시간이 너무 어색했어요. 뭔가 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에 죄짓는 것 같았고요. 

...'지금 상황이 내 탓도 아니고 어쩔 수 없지'라며 견디다 보니까 점차 편해지더라고요. 제 인생 처음으로 오롯이 저만의 시간을 가져본 기회였어요. 경험하니까 이제야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제 삶에 뭐가 빠져 있었는지.

드디어 출발선에서 벗어난 지연 씨는 여러 면에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의 희생을 당연하게만 여기고 요구해온 주변 사람들에게 화를 내기도 했고, 직장 업무와 집안일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